<칼럼> 유현숙의 위로와 화해
올해도 살아남은 우리를 위하여
▲유현숙 (임상심리전문가/ 인지행동치료전문가)
내담자(상담을 받는 사람)에게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우울 삽화가 꽤 깊게 할퀴고 지나가 올해 유독 힘든 시간을 보냈던 내담자였다. “사는 방법은 죽는 것 밖에 없다고 느껴지는 때가 있었습니다.(중략) 선생님 덕분에 많은 시간을 살아냈고, 살아내고 있고, 살아낼 것 같습니다. 오래오래 치료자로 남아 주세요. 저와 다른 내담자분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살 만한 것이라고 느낄 수 있게요.” 꼭 우울, 불안, 큰 혼란감 같은 뚜렷한 정신적 고통이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는 각자 자기 자리에서 자기 문제랑 씨름했을 것이다. 가족, 연인, 동료들과의 크고 작은 갈등이 우리를 괴롭게 했을 수도 있고 입시, 취업, 주거문제나 경제적 상황 등으로 속이 상하고 골머리를 앓는 일들이 수도 없이 많았을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사회적으로 커다란 상실감과 고통감을 주는 큰 사건, 사고들이 있었고 그 안에서 우리는 많은 좌절과 울분을 느꼈다.
‘울분’. 이 말 만큼 우리 국민들의 정서를 한 마디로 잘 설명해주는 단어가 있을까. 울분은 무언가 부당하거나(unjustice), 불공정한 일을(unfairness) 당했을 때 느끼는 기분에 해당한다. 독일 정신의학자 마이클 린든 교수는 ‘외상 후 울분장애, PTED’라는 용어로 이를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얻을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을 속이면 벌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 다시 말해 정의로운 세상, 정당한 세계에 대한 신념을 갖고 산다. 공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로 대우받을 것을 기대하며, 그렇게 대우받을 때 우리는 사회 집단에 안전하게 소속되었음을 느낀다. 하지만 이러한 신념이 부당함으로 위협받을 때 우리는 낙담하게 되고 억울한 감정, 무력감을 느끼며 때때로 복수심을 지니게 되곤 한다.
올해 우리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에서 살았는가? 개개인은 올바르게 존중받고 안전하게 보호받았는가? 이 질문에 쉽게 ‘예’라고 대답하긴 어려울 것 같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은 참사가 다시 반복된 것 하나만으로도, 그 이후에 누구도 정당하게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태도를 보인 것 만으로도 많은 이들은 울분을 품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뿐인가. 고물가, 고환율 시대에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것은 일반 서민들이고, 폭우나 산불 등에서 국민들이 생명과 재산을 잃는 일도 어김없이 반복되었다. 일이 생긴 것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잘못이 없으면 올바르게 대우받고, 잘못이 있는 사람은 벌을 받는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질 때, 그렇게 생긴 울분을 마땅히 표현할 방법마저 찾지 못할 때, 우리는 어쩌면 속으로 병이 드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내담자가 쓴 것처럼, 우리는 ‘많은 시간을 살아냈고, 살아내고 있고, 살아낼 것’이다. 가까운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공감받으면서, 어디에라도 ‘이것은 부당하다’고 목소리를 내고 울분을 표현하면서 우리는 각자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필요에 따라 심리상담이나 정신과 치료를 받은 이들도 많을 것이다. 간간이 들려오는 기쁜 소식들에서 위안과 희망을 얻기도 했다. 우리 모두는 공동체로서 스스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리라 믿고 있으며, 내년이 올해보다 조금은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는다.
이를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더 이상 울분을 느끼지 않기 위한 행동을 작게나마 하기도 한다. 정신건강전문가로서 가끔은 그러한 노력을 개인의 차원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다. 나라와 정치권이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 국민이 느끼는 울분이라는 정서를 깊게 이해해 이를 달래기 위한 노력을 하고, 보다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며 잘못을 바로잡는 노력을 더 기울이길 바란다. 내년에는 우리 사회 구성원 누구도, 부당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고 정당하게 존중받으며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