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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칼럼> 피해자가 되찾을 영광

<유현숙의 위로와 화해>

 

피해자가 되찾을 영광

 

유현숙 임상심리전문가/인지행동치료전문가

 

한 전직 대통령 손자의 폭로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그야말로 내부자의 시선에서 비자금이 어떻게 그 일가의 호화생활에 쓰였는지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어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과 후련함을 주기도, 씁쓸함을 남기기도 한다.


70년대 말에 태어난 필자는 (7년이나 되었던) 그 대통령 임기 중에 유년시절을 보냈다. 학생운동으로 꽤 유명한 대학이 동네에 있다 보니 하루가 멀다 하고 최루탄 냄새에 눈물, 콧물을 쏟으며 등, 하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에는 뉴스만 틀면 80년대 특유의 화려한 색채감 속에 대통령의 업적을 치하(?)하는 장면이 먼저 나왔고, 이어서 학생, 시민들이 자욱한 연기 속에서 시위하는 장면이 늘 함께 보도되었다. 시위대에 대한 구타가 일상적이었으며 때로는 고문과 그로 인한 치사(致死) 소식까지 들려왔다. 조잡한 화려함으로는 아무리 가리려 해봐야 가릴 수 없는 어둡고 무서운 분위기였다. 뒤숭숭하며 흉흉한 시절이었다.


그래서인지 일상에서도 폭력이 흔했던 것 같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을 심하게 체벌하는 것도, 가정에서 남편이 아내를, 부모님이 자녀들을 때리는 일도 흔하디 흔했다. 힘이 있는 사람이 명령을 하면 그것이 설령 부당하거나 비합리적이어도 찍소리 한번 못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문화도 꽤 오래 유지되었다. 군부가 폭력으로 정권을 찬탈하고 유지할 때 사회 전반이 겪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부작용이었으리라.


하지만 저항 역시 대한민국 국민의 유전자 아닌가. 그렇게 얻어터지고 짓밟히면서도 부당한 걸 부당하다고 외친 국민들의 목소리가 합쳐져 가까스로 우리나라는 지금과 같은 눈부신 민주주의 사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현재 우리가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갈 걱정, 무자비한 폭력에 대한 걱정 없이 비교적 마음 편히 살고 있는 건 불과 몇십 년 전 우리 윗세대가 자신들의 삶을 희생해가면서 물려준 귀중한 유산일 것이다.


최근 학교폭력을 주제로 방영해 큰 인기를 얻은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에서 등장인물이 이렇게 말한다.
피해자들이 잃어버린 것 중에 되찾을 수 있는 것이 몇 개나 된다고 생각하세요? 나의 영광, 명예, 오직 그것밖에 없죠”. 그렇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나 자신을 내던지면서 바랐던 것은 오로지 한 사람으로서 내 존재가 여기 있음을, 아무리 힘으로 짓밟고 돈으로 회유해도 나의 존엄성과는 바꿀 수 없음을 상대방에게 알리고자 하는 것이었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우리가 누리는 것은 그저 공포와 걱정이 없는 평범하고 안온한 일상인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이제 가해자 일가의 한 후손이 내부고발을 했고, 그것이 여전히 뒤틀려있던 현대사의 한 페이지에서 단 몇 줄이라도 바로잡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그래서 당시 크고 작은 폭력에 시달렸던 우리 모두의 마음에 응어리졌던 한 부분도 풀어지기를. 정의와 위로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본다.


덧붙이자면, 그의 아버지가 폭로자인 아들을 두고 우울증 환자여서라고 말한 건 마치 민중들의 저항을 빨갱이라서’, ‘폭동이어서라고 말했던 그들 일가의 오래된 습성을 떠올리게 해 몸서리쳐진다. 그가 어떤 정신적 아픔을 겪고 있든, 그것은 이 사태의 원인이 될 수 없다.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과 폭력의 또 하나의 결과일 뿐이다.

▲유현숙 임상심리전문가/인지행동치료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