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숙의 위로와 화해>
마음의 중심
유현숙 임상심리전문가/인지행동치료전문가
몇 년 전 젊은 가수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고 충격을 받았다. 가수 아이유는 그해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고 수상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기쁠 때 기쁘고, 슬플 때 울고, 배고프면 힘 없고, 아프면 능률 떨어지고 그런 자연스러운 일들이 자연스럽게 내색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아티스트가 사람들을 위로하는 일인 만큼 그렇게 하지 못하는데, 프로의식도 좋지만 사람으로서 스스로 돌보고 다독였으면 좋겠다. 내색하지 않다가 병드는 일이 진심으로 없었으면 좋겠다”.
이 말 안에는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일의 기본이 다 담겨 있어서 놀랍다. 왜 그녀가 단단한 내면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 시대의 아이콘이 되어가는지 알게 해준다.
실제로 21세기 심리학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며 치료현장에서 널리 쓰이는 것이 ‘마음챙김(mindfulness)’이다. 이는 다른 말로 ‘알아차림’이라고도 하는데, 말 그대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여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자각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여기에 잘 머무르고 있는지 알고 싶으면 잠시 눈을 감고 내 주의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관찰해보도록 하자. 혹시 내 주의가 과거에 겪은 일이나 앞으로 일어날 일에 가 있지는 않은가? 어떤 생각에 골몰하고 있거나 다른 사람의 반응에 집착하고 있지는 않은가? 정말 그러고 있다면 ‘그렇구나, 지금 내 마음이 거기로 흘러가고 있구나’ 하고 잠시 알아차린 뒤 다시 지금, 여기에서 내 몸과 마음이 어떤지로 눈을 돌려 이를 살펴보도록 한다. 우울하거나 불안한 사람들이 심리상담에 오면 이야기를 나누거나 함께 명상을 해보면서 스스로 얼마나 현재에 살지 못하고 과거 일에 집착하고 있는지, 아니면 다가올 일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훈련을 우선 계속 반복하게 된다.
지금-여기에서 내 몸과 마음이 어떤지 알아차리는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는 호흡을 추천한다. 편안한 자세로 눈을 감고 천천히 심호흡을 하는데, 중요한 것은 내가 호흡하고 있음을 어떤 식으로든 느끼는 것이다. 숨이 콧구멍과 기도를 통해 들어가고 나가는 느낌에 초점을 두어도 좋고, 폐가 늘어나고 줄어드는 느낌, 혹은 배가 볼록해지는 느낌에 주목해봐도 좋다. 이렇게 몇 번만 반복해도 오롯이 호흡 그 자체를 느끼게 되며, 신기하게도 어지러웠던 마음이 가라앉고 중심이 잡히는 느낌이 든다. 때로는 어떤 생각이나 감정이 끼어들어 잠시 주의를 빼앗길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주의가 어디로 갔었는지를 한번 알아차린 뒤 다시 호흡으로 돌아오도록 한다(그때 주의가 흘러간 대상이 자기가 평소 자주 주의를 빼앗기는 대상일 확률이 높다).
이렇게 호흡을 기본으로 해서 지금 내 몸의 상태가 어떤지를 천천히 훑어보며 알아차려 본다(body scanning). 그럼 의외로 머리가 무거운지, 눈이 뻑뻑한지, 어깨가 뭉쳐 있는지, 배가 고프거나 위장이 불편한지 등 많은 정보를 알 수 있다. 이는 우리가 그러한 기본적인 몸의 상태 조차 알지 못한 채 얼마나 숨가쁘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호흡과 몸을 알아차리면 지금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자동적으로 알게 된다. 아이유가 말한 것처럼 기쁘면 기뻐하고, 슬프면 울고, 배가 고프면 힘이 없으니 무언가를 먹거나 마시고, 졸리면 자고, 뭉쳐 있으면 스트레칭을 하고. 이런 자연스러운 행위들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자라면서 너무 오랫동안 그런 자연스러운 욕구들을 통제하는 것을 미덕으로 배워왔을지 모른다. 기쁠 때 웃고, 슬플 때 우는 것이 문화적으로 점잖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거나 필요한 만큼 쉬고 천천히 먹는 것이 바쁘디 바쁜 현대사회에서 죄악시되다시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필요하다면 자신의 자연스러운 욕구와 감정을 잠시 누르고 인내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해야 할 일과 이루어야 할 것이 너무 많다고 느끼지 않는가? 아니면 거의 중독에 이를 정도로 지나치게 넘쳐나는 감각적 정보들로 몸과 마음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번 봄만 해도 그렇게 누군가는 떠났고, 우리는 누군가를 잃었다. 그렇기에 하루에 잠시만이라도 이렇게 내 몸과 마음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필자의 지인은 늘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느라 몸과 마음이 지치지 않느냐며 오히려 상담자인 나를 위로했다. 그러면서 집안 어딘가에 ‘자기만의 성소(聖所)’를 가지라고 조언해 주었다. 거기서 가만히 머무르며 회복하고 자기를 돌보라는 말로 들려서 고마웠다. 지금 내 몸과 마음이 짓눌려 병들고 있지 않은지, 내 일상이 건강하게 잘 흘러가고 있는지를 알아차리고 필요한 것을 나에게 해주기,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내색하면서 요구도 하기. 독자들도 하루에 5분이라도 그렇게 나와 함께 있고, 나를 위해주는 시간을 꼭 가져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