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숙의 위로와 화해> ‘○○다운’ 한 해 유현숙 임상심리전문가/인지행동치료 전문가 ‘견리망의(見利忘義)’. 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라고 한다. 장자 산목편에 나오는 말로 “눈 앞의 이익을 보자 의로움을 잊는다”는 뜻이다. 이익만을 쫓다가 의리와 정의를 잊어버린 사람 중 누구의 얼굴이 떠오르는가? 슬프게도 사익을 추구한 정치인·행정가·법조인, 교권을 침해한 학생과 학부모, 자식이나 제자를 학대하고 방임한 어른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나 자신 또한 어느 순간 ‘인간다움’, ‘사회구성원다움’, ‘직업인다움’, ‘부모다움’, ‘자식다움’을 잠시라도 잊었던 건 아닌지 되돌아본다. 한치의 부끄러움이 없었다고 말하기 어려움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언제나 꼿꼿하게 자신의 본분을 지킨다는 게 누구에겐들 쉬운 일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순간 ‘이익을 쫓고 싶은 충동’을 이겨내며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한 대다수 시민, 우리 자신이 있었기에 세상의 질서가 큰 탈 없이 유지되었다. 2023년 개봉해 천만 명 이상 관객을 스크린 앞으로 다시 불러모은 영화 <서울의 봄>도 ‘견리망의’라는 말을 떠오르게 한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유현숙의 위로와 화해> 세상은 넓고 너는 자유롭다 유 현 숙 임상심리전문가/인지행동치료전문가 바야흐로 수능의 계절이다. ‘수능 한파’라는 말이 있듯이 갑자기 날씨가 쌀쌀해지는 이 무렵이 되면 수험생들은 옷깃을 여미며 마음도 단단히 무장해야 한다. 공부를 잘하든 못 하든 12년 동안 학생으로서 배운 것들을 검증받는 인생에서 한 번 있는 크고 중요한 행사임에는 분명하다. 누구나 자기가 하는 일에서 스트레스를 받듯이, 학생들도 공부를 하며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경험할 것이다. 열심히 하는데도 기대만큼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서, 아무리 설명을 듣고 문제를 풀어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아서, 자기 딴에는 노력했다고 생각하는데 주변에서는 인정해 주지 않아서, 나랑 비슷하게 공부한 친구가 성적이 더 잘 나와서 등. 그 뿐이랴.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무슨 일을 직업으로 선택해야 할지 막막하게 느끼는 친구들도 부지기수다. 그래서인지 상담실에는 학업/진로 문제로 상담을 받으러 오는 청소년들도 많다. 특히 수능 전후로 상담자는 더 긴장할 수 밖에 없는데 이런 저런 고민과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된 청소년들이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이맘때 유독 많기
분노에 대처하는 자세 유현숙 임상심리전문가/인지행동치료전문가 서울 신림역에서 행인을 상대로 한 ‘묻지마 흉기 난동’이 벌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분당 서현역에서도 흉기 난동이 벌어져 죄 없는 시민들이 다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심지어 인터넷을 중심으로 유사범죄를 예고하는 글들이 올라와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가해자들의 배경, 성격, 이유가 조금씩 다를지 몰라도 그 기저에서 공통으로 읽히는 감정은 분노다. 실제로 신림역 사건 가해자는 경찰 조사에서 “나는 불행하게 사는데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 분노에 가득차 범행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물론 아무리 분노했다고 해도 죄없는 시민들에게 무차별적인 테러를 하는 것은 절대로 용서할 수도, 용납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분노한다고 해서 모두가 그렇게 행동한다면 이 사회가 어떻게 될 것인가.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심지어 모방범죄 예고까지 곳곳에서 나오는 마당이라면 그 분노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에 대해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하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점차 범죄가 확산된다는 ‘깨진 유리창 이론’처럼 평소 곳곳에 있는 위
<유현숙의 위로와 화해> 마음의 중심 유현숙 임상심리전문가/인지행동치료전문가 몇 년 전 젊은 가수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고 충격을 받았다. 가수 아이유는 그해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고 수상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기쁠 때 기쁘고, 슬플 때 울고, 배고프면 힘 없고, 아프면 능률 떨어지고 그런 자연스러운 일들이 자연스럽게 내색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아티스트가 사람들을 위로하는 일인 만큼 그렇게 하지 못하는데, 프로의식도 좋지만 사람으로서 스스로 돌보고 다독였으면 좋겠다. 내색하지 않다가 병드는 일이 진심으로 없었으면 좋겠다”. 이 말 안에는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일의 기본이 다 담겨 있어서 놀랍다. 왜 그녀가 단단한 내면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 시대의 아이콘이 되어가는지 알게 해준다. 실제로 21세기 심리학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며 치료현장에서 널리 쓰이는 것이 ‘마음챙김(mindfulness)’이다. 이는 다른 말로 ‘알아차림’이라고도 하는데, 말 그대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여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자각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여기에 잘 머무르고 있는지 알고 싶으면 잠시 눈
<유현숙의 위로와 화해> 징검다리 놓기 유현숙 임상심리전문가/인지행동치료전문가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질문 하나를 드리고 싶다. “지금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가 어떻습니까?” 배우자와, 자녀와, 어머니, 아버지와, 형, 누나, 동생과, 직장 상사, 동료와, 친구, 연인과의 관계가 편안하신지? “네, 모두 편안합니다”라는 답을 망설임 없이 할 수 있다면 정말 다행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리고 이 글을 그냥 지나치셔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머릿속에 현재 불편한 관계에 놓여있는 누군가가 떠오른다면 잠시 시간을 내어 곰곰이 생각해보면 좋겠다. 과연 우리 관계의 문제는 무엇일까? 심리상담에서는 관계 문제를 다루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한 중년 부인이 공황장애 증상을 호소하며 상담을 받으러 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결혼생활 내내 배우자가 자신의 원가족을 늘 우선순위에 두고 내담자의 희생은 당연시했다고 한다. 내담자는 최선을 다해 배우자와 시댁의 요구에 맞추어 행동했지만 결과적으로 극심한 분노와 불면증, 때때로 숨을 쉬기 어려운 공황증상이 찾아왔다. 그런가 하면 어떤 대학생은 학창시절 또래관계에서 괴롭힘을 당했을 때 부모님께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