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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다운’ 한 해

묵묵히 제몫 다한 우리에게 박수를, 올해도 뿌듯할 수 있기를

<유현숙의 위로와 화해>

 

‘○○다운’ 한 해

 

유현숙 임상심리전문가/인지행동치료 전문가

 

 ‘견리망의(見利忘義)’. 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라고 한다. 장자 산목편에 나오는 말로 “눈 앞의 이익을 보자 의로움을 잊는다”는 뜻이다.

 이익만을 쫓다가 의리와 정의를 잊어버린 사람 중 누구의 얼굴이 떠오르는가? 슬프게도 사익을 추구한 정치인·행정가·법조인, 교권을 침해한 학생과 학부모, 자식이나 제자를 학대하고 방임한 어른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나 자신 또한 어느 순간 ‘인간다움’, ‘사회구성원다움’, ‘직업인다움’, ‘부모다움’, ‘자식다움’을 잠시라도 잊었던 건 아닌지 되돌아본다. 한치의 부끄러움이 없었다고 말하기 어려움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언제나 꼿꼿하게 자신의 본분을 지킨다는 게 누구에겐들 쉬운 일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순간 ‘이익을 쫓고 싶은 충동’을 이겨내며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한 대다수 시민, 우리 자신이 있었기에 세상의 질서가 큰 탈 없이 유지되었다.

 

 2023년 개봉해 천만 명 이상 관객을 스크린 앞으로 다시 불러모은 영화 <서울의 봄>도 ‘견리망의’라는 말을 떠오르게 한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며 분노한 이유는 쿠데타의 수괴, 그의 광기 어린 권력욕의 민낯을 실시간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더 깊숙이 살펴보면 결국 자기 자리에서 자신이 할 일을 내팽개친 많은 등장인물 또한 우리를 화나게 했다. 대통령은 대통령답지 않았고, 장관은 장관답지 않았고, 군인들은 군인답지 않았다. 그렇게 어떤 이익 때문에, 혹은 어떤 두려움 때문에 자기 자리를 떠나 버리고, 할 일을 외면한 순간들이 모여서 우리는 봄을 맞이하지 못한 채 너무 긴 겨울을 보냈다.

 최근 <티쳐(a Teacher, 2020)>라는 미국 드라마를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드라마 속 여주인공은 교사로 새로 부임한 학교에서 순간적인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미성년자인 제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다.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법한 평범한 사람이다. 하지만 가끔 마트에서 물건을 훔친다거나 교내 행사가 열리는 동안 창고에서 ‘딱 한 번인데 어때’라며 술을 마시는 등 소소한 일탈을 한다. 감독이 그렇게 인물을 설정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우리 속담에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걸 보여주려고 한 건 아니었을까. 평범한 사람도 작은 유혹과 충동에 흔들리는 순간 얼마든지 큰 사건, 사고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점 말이다. 결국 피해자인 제자는 먼 훗날 가해자를 만나 “내 책임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데 얼마나 오래 걸린지 알아요? 난 그냥 아이였어요”라며 따진다. 작은 일탈로 시작된 직무유기와 범죄가 한 사람의 삶을 통째로 망가뜨린 걸 보여준다.

 

 2023년 ‘제야의종’ 타종행사에 참여한 시민대표 18명이 누군지 유심히 살펴보았다. 지난 8월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 당시 부상을 입고 쓰러져 있는 여성을 발견하고 구조활동을 한 ‘의인’ 윤도일 씨, 보호 종료 아동에서 자립준비 청년 멘토가 된 박강빈 씨, 아르헨티나 출신 열차 기관사 알비올 안드레스 씨 등. 지난해 우리 마음을 할퀴었던 여러 사건들이 있었지만, 이렇게 제 몫을 다해 자리를 지키고 선생을 베푼 이들이 있었기에 상처는 감싸지고 다시 희망을 갖는다. 도망치고 싶고, 나태해지고 싶을 때, 본분에 눈 감고 싶을 때 정신을 다잡고 할 일을 한 사람들. 그 분들 뿐 아니라 우리 모두 그랬다고 자신한다. 그러므로 평범한 우리 대다수는 박수 받아 마땅하다. 2024년 올해 말에도 그렇게 우리 자신에게 ‘뿌듯함’이라는 작은 상장 하나 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