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숙의 위로와 화해>
세상은 넓고 너는 자유롭다
유 현 숙 임상심리전문가/인지행동치료전문가
바야흐로 수능의 계절이다. ‘수능 한파’라는 말이 있듯이 갑자기 날씨가 쌀쌀해지는 이 무렵이 되면 수험생들은 옷깃을 여미며 마음도 단단히 무장해야 한다. 공부를 잘하든 못 하든 12년 동안 학생으로서 배운 것들을 검증받는 인생에서 한 번 있는 크고 중요한 행사임에는 분명하다.
누구나 자기가 하는 일에서 스트레스를 받듯이, 학생들도 공부를 하며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경험할 것이다. 열심히 하는데도 기대만큼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서, 아무리 설명을 듣고 문제를 풀어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아서, 자기 딴에는 노력했다고 생각하는데 주변에서는 인정해 주지 않아서, 나랑 비슷하게 공부한 친구가 성적이 더 잘 나와서 등. 그 뿐이랴.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무슨 일을 직업으로 선택해야 할지 막막하게 느끼는 친구들도 부지기수다.
그래서인지 상담실에는 학업/진로 문제로 상담을 받으러 오는 청소년들도 많다. 특히 수능 전후로 상담자는 더 긴장할 수 밖에 없는데 이런 저런 고민과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된 청소년들이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이맘때 유독 많기 때문이다.
사연이야 제각각이겠지만 공통점도 있다. 그들의 시야가 ‘수능점수’, ‘어느 대학, 어느 학과’에 유독 못박혀 있다는 것이다. 이들 중에는 ‘수능 실패(원하는 대학, 학과에 들어가지 못함)은 곧 인생 실패’라고 단단히 믿고 있는 친구들이 많아 안타깝다. 필자도 10대-20대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믿었던 적이 있어서 그 마음이 이해는 된다. 아무리 “네가 행복하면 된다, 원하는 일을 해라”고 누군가 말해줘도-심지어 그때는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도 적었다- 엄연히 학벌로 줄 세우는 분위기가 존재하고, “직업에 귀천은 없다”지만 엄연히 급여에 천지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다 떠나서 12년간 노력한 결과가 좋지 않으면 좌절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수능일을 지나면 곧 성인이 되는 이 청소년들이 좌절에만 빠져 있을 필요는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번의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통해 무엇을 배우고, 그 경험을 삶의 어떤 재료로 쓸지는 여러분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삶이라는 것이 좌절이라는 쓴맛을 품고 있다는 것을 처음 제대로 경험해본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른 쓴맛을 보게 될 때 조금은 의연하게 헤쳐나갈 수도 있으리라. 이 쓴맛을 어떻게 적절히 배합하여 훌륭한 요리를 완성할지 고민해보라고 삶이 주는 메시지일 수도.
마지막으로 림태주 시인의 <어머니의 편지> 한 구절을 수험생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부질없고 쓸모없는 것들은 담아두지 말고 바람 부는 언덕빼기에 올라 날려 보내라/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라면 지극히 살피고 몸을 가까이 기울이면 된다/나는 네가 남보란 듯이 잘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괴롭지 않게, 마음 가는대로 순순하고 수월하게 살기를 바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