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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분노에 대처하는 자세 (분당 서현역 '묻지마 범죄'를 보면서)

화, 증오의 심리 이해해야
총체적 위기 닥치기 전에 곳곳에 있는 위기들 시급하게 관리

분노에 대처하는 자세

 

유현숙 임상심리전문가/인지행동치료전문가

 

 서울 신림역에서 행인을 상대로 한 ‘묻지마 흉기 난동’이 벌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분당 서현역에서도 흉기 난동이 벌어져 죄 없는 시민들이 다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심지어 인터넷을 중심으로 유사범죄를 예고하는 글들이 올라와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가해자들의 배경, 성격, 이유가 조금씩 다를지 몰라도 그 기저에서 공통으로 읽히는 감정은 분노다. 실제로 신림역 사건 가해자는 경찰 조사에서 “나는 불행하게 사는데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 분노에 가득차 범행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물론 아무리 분노했다고 해도 죄없는 시민들에게 무차별적인 테러를 하는 것은 절대로 용서할 수도, 용납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분노한다고 해서 모두가 그렇게 행동한다면 이 사회가 어떻게 될 것인가.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심지어 모방범죄 예고까지 곳곳에서 나오는 마당이라면 그 분노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에 대해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하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점차 범죄가 확산된다는 ‘깨진 유리창 이론’처럼 평소 곳곳에 있는 위기들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결국 총체적 위기가 닥치기 때문이다.

 그들의 행동을 결코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지만 그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그러한 극심한 분노와 증오라는 감정 상태에 이르게 되었는지 추측하는 것은 (서글프게도) 어렵지 않다. 우리 모두 한번쯤은 그런 절망, 외로움, 소외감, 억울함을 느껴봤기 때문이리라. 심리학적으로 분노라는 감정은 무례한 행동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고 할 때, 불공정하게 행동하는 대상을 대할 때 주로 만들어진다고 본다(본지 칼럼 <올해도 살아남은 우리를 위하여>, 2022.12.28.일자 참고). 즉 좌절이나 박탈을 경험했는데 그것이 합리적이지 못하고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면 복수심이 들고 공격 성향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이런 억울함, 울분이 들게 하는 사회적 요인으로는 경제적인 불평등, 경쟁 위주의 사회구조 등이 꼽힌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정적인 직장, 내 집 한 칸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 지는 꽤 오래됐다. 그에 따라 젊은이들이 무력감에 빠지고 요행을 바라기도 하며, 그러다 다시 경제적 궁핍에 몰리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쉽게 스마트폰을 통해 접속해 다른 사람들의 사생활을 볼 수 있는 사회관계망서비스가 확산되면서 화려하거나 안정적인 삶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가속도가 붙어 확산되고 있다. 불만과 좌절감에 쉬이 불이 붙는 환경인 것이다.

 분노도 분노지만 정신질환자에 대한 치료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시스템도 한몫을 한다고 본다.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정신질환 치료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아직 미성숙한 단계고, 치료비 지원 또한 미비하며 심리사법이 아직도 만들어지지 않는 등 법적 체계 또한 미흡하기 때문이다.

 다른 이야기면서 이어지는 이야기로 한 다큐멘터리에서 비행청소년 보호시설에서 지내는 소년범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어려서 부모님이 헤어지고 집을 나가는 등 어른들에게 돌봄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쉽게 폭력과 약물, 범죄에 노출되었던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의 비행을 오롯이 한 개인의 차원으로 돌릴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 부모나 한 가정의 문제로만 돌릴 수 있을 것인가.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친절과 관용, 온정을 베푸는 것은 나도 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잘 살아가기 위해, 즉 인간이 생존하고 어울려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 발달시킨 고도의 기술일지 모른다. 소외되고 화난 사람들에게 한번쯤 더 관심을 기울이고 따뜻하게 대해야 할 이유가 거기 있다. <끝>